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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히어로: 개리 맥칼리스터 – ‘퇴물 선수’에서 리버풀 레전드로

컬트히어로: 개리 맥칼리스터 – ‘퇴물 선수에서 리버풀 레전드로 


By Leo Moynihan

 

2019 이른 런던. 템즈강에서 불과 스로인 거리 남짓 떨어진 펍에 프리미어리그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리버풀의 팬들이 모였다. 아직 킥오프 전까지 시간이 남아있기에 팬들은 오랜 역사로 이어져 경기 의식을 치루기 위해 모인다. 풀럼이 그렇게 겁내야 버거운 상대는 아니지만 리버풀의 우승이 달려있는 만큼 긴장된 팬들의 대화가 안을 채운다.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맥주잔들이 비워지고 점차 효과가 나는 하더니 응원구호가 시작된다. 지난 날들의 영광과 현재와 과거의 영웅들에 대한 응원가가 울려퍼진다.

명의 이름이 유독 귀에 꽂히는데, 그의 이름은 개리 맥칼리스터. 시즌 동안 고작 87경기 밖에 선수의 응원가가 우렁차게 들린다.


‘Gary Macca, Gary, Gary Macca!’

 

2002 안필드를 떠난 개리 맥칼리스터는 오늘날까지 팬들에게 리버풀의 영웅으로, 그것도 어울리지 않게 컬트 히어로로 자리잡고 있다.(*컬트 히어로란 대중에게 널리 사랑 받는 영웅이 아닌 특별한 팬덤이 있는 영웅을 말한다.) 어울리지 않게라는 표현을 이유는 그가 클럽에 합류했을 당시 나이가 35살이었고 위로 올라가기만 해도 바쁜 클럽이 데려올 법한 선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맥칼리스터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적에 대해 의심스러워 했어요.”라고 GOAL STUDIO 전했다. 저는 당시 리즈 유나이티드, 코벤트리 시티와 치열한 강등권 탈출 다툼을 했고, 스코틀랜드 국가대표와 리그 우승 경력에도 많은 이들이 저는 이제 전성기를 지났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다행히 당시 감독이었던 Gerard Houllier감독은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죠.”



 

1998 Roy Evans 감독으로부터 감독직을 물려받은 Houllier감독은 21세기로 나아가는 팀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제이미 캐러거, 로비 파울러, 마이클 오웬, 스티븐 제라드와 같이 리버풀에서 자란 젊은 선수들을 기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디트마 하만과 사미 히피야를 뒤이어 팀에 들였고 2000 여름, 우승을 독차지 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그들의 유일하다 싶은 라이벌 아스날의 그림자 안에서 명을 영입하는데 그의 이름은 개리 맥칼리스터였다.

 

맥캘리스터는 제가 리버풀에 왔을 팬들은 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던걸로 기억해요라며, “어느 팬매거진의 에디터는 대체 저런 잊혀진 대머리를 데려온거야? 내가 선수가 12경기 이상 출전하면 Woolworths (영국의 대형마트)에서 바지 벗고 엉덩이 깐다라고 까지 했어요라며 당시 분위기를 회상했다.

 

맥칼리스터에 대한 이런 의구심을  밖으로  것은 팬들 만이 아니었다. 당시 아직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촉망 받는 선수였던 스티븐 제라드 또한 그가 이미 전성기를 지났다고 생각했다고 수 년  그의 자서전에서 밝혔다. 동료들과 이 노장선수 대한 뒷담화 아닌 걱정을 한껏 나눈  그가 에이전트와의 전화통화에서 이게  뭐야?” 라고 묻자 그의 에이전트는 걱정마 스티비, 개리는 너를 위해서도 리버풀에  필요한 선수야. 그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그에게서 많이 배워봐.” 라고 했다. 그러자 제라드는 아래와 같이 소리쳤다고 한다. “F**k off! 맥칼리스터 보고 f**king 나한테 배우라고 !” (*제라드 선수가 실제 썼던 표현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드리기 위해 원본 그대로 전합니다.)



 

제라드가 젊음의 혈기에 성질 부리고 있을 맥칼리스터도 그의 젊음을 찾아나섰다. 리버풀과 계약서에 사인한 여름 저는 몸상태를 바짝 끌어올렸어요. 프리시즌 합류할 준비돼 있는 상태여야 했죠. 선수들은 새로 들어오는 선수들을 맞이할 많은 시간을 주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Melwood (리버풀의 트레이닝센터) 걸어 들어갈 젊은 선수들보다 좋은 몸으로 들어가야 했어요.” 그는 정말 그렇게 프리시즌 체력테스트에서 모두를 이기고 모든 훈련에서 그의 클래스를 어김 없이 증명해냈다. 그러자 가장 촉망 받는 유망주들이 그의 조언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원정경기를 떠날 맥칼리스터 옆에 앉아 조언을 듣기 위해 뛰어가려고 알람을 맞춰놓기도 했어요.”라며 그를 인정하게 제라드가 말했다.

모든 원정길이 마치 수업 같았어요. 그리고 저는 수업을 듣고 깊이 감명 받는 학생 같았죠.” 수업들의 내용은 언제 멋있는 롱패스를 해야되는지 해서는 안되는지, 발바닥이 지면에 닿아 있는게 군중이 열광하는 깊숙한 태클보다 효과적인지 등에 대한 것이었다. 맥칼리스터는 그렇게 후배 레전드를 키워내고 있었지만 또한 자신의 야망을 갖고 있었다. 2000-01 시즌을 다소 조용하게 시작한 그는 팬들에게 제라드만큼이나 존재감을 갖는 선수가 되었다.


 

 

수많은 골들과, 개의 트로피 (리그 / UEFA / FA ), 그리고 추억이 넘쳐났다. 그리고 모든 것의 가운데에는 리버풀을 앞으로 이끄는 피터팬과 같은 개리 맥칼리스터가 있었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열정적으로 불리우는 그의 응원가를 들으면 때의 추억을 엿볼 있다. 노래는 마치 바이외 테피스트리 (Bayeux Tapestry)처럼 그의 영광스러운 업적을 열거한다.(*바이외 테피스트리는 1066년에 일어난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 이야기를 그림으로 묘사해 나타낸 자수 작품으로 영국인에게는 귀중한 역사의 상징물이다.)

 

“Your derby goal,” for his 44-yard winner at Goodison Park.

“Your Barca pen,” for his Uefa Cup semi-final winning spot-kick.

“Your Spurs peno, your Coventry goal, your Bradford goal,” for vital league efforts.

“Your Dortmund pen,” for another vital goal on the way to European glory.

(“너의 더비 ,” Goodison Park에서 넣은 40.23미터 .

너의 바르셀로나 페널티킥,” UEFA 4강전에서 넣은 결승 페널티킥 .

너의 스퍼스 패널티킥, 코벤트리 , 브래드포드 ,” 리그에서 중요했던 골들.

너의 도르트문트 패널티킥,” 유럽 대항전에서 승리를 가져다 다른 중요했던 .)

 

하지만 서포터들에게 진정으로 평생동안의 사랑을 받게 골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승점 점이 절실했던 시즌 후반 에버튼을 상대로 성공한 장거리 프리킥이다. 당시 10 비슷한 자리에서 프리킥을 찼어요. 그때 에버튼 골키퍼가 제가 파포스트 방향으로 것이란 빨리 예측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프리킥을 차려고 준비할 키퍼가 똑같이 막을 준비를 하고 있는 눈치챌 있었어요. 캐러거가 제게 다가와 귓속말로 완전 거기야. 지금 키퍼 공간 보이지.’라고 했어요. 저는 조용히 . 들킬라라고 했고 결국 그의 말이 맞았어요. 저는 공을 반대로 저랑 가까운 골포스트 (near post) 쪽으로 찼고 공은 그대로 빨려들어갔죠.” 그 순간 팬들은 열광했고 그는 영웅 신분을 획득하였다. 맥칼리스터는 시즌 별처럼 밝게 빛났지만 아무리 잘했어도 2000-01 시즌 미니 트레블을 달성했던 당시와는 비할 수는 없었다. 시간은 흘렀고 다른 선수들이 왔다 다시 떠나가고 있다. 리버풀의 영웅들이 자리잡고 있는 경기장은 시간이 지날 수록  나갈테지만 맥칼리스터는 절대 떠날 일이 없을 것이다.